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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2019년 참가자

나는 2019년도에 어라운드 사업에 참여했다. 그 시작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에 공공예술사례집을 함께 제작했던 알투스(altus) 멤버들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었고, 예술적인 문제해결을 전보다 더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우리만의 특별한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예술가로서든 예술교육자로서든, 예술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방법과 그 양상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지금 여기에 대해 민감하고 섬세하게 감각하는 것, 그것에서부터 예술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2019년, 그 해의 어라운드 탐방 공고는 유독 내 눈에 띄었다. ‘사회참여적 예술교육’이라는 카테고리를 보자 단박에 우리를 괴롭혔던 ‘파크 픽션’이 떠올랐던 것이다. 함께 연구했던 2017년의 멤버 중 나와 이계원, 김잔디 작가 3인의 스케줄이 조율 가능했기에 우리는 <아라크네>라는 팀명으로 독일 함부르크를 답사하겠다는 기획서를 작성했다.
일정을 계획하고 현지와 연락을 취하면서 우리는 ‘왜 만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고 그에 따라 수정해나갔다. 이는 ‘나는 누구이고’, ‘그들은 누구이며’, ‘그들과 나, 즉 우리는 왜 만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 즉 알투스의 아라크네 팀은 어떤 예술가/예술교육자인지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자 그간 막연히 감각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부분들을 언어로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이는 생각보다 어려우면서도 의미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정리되자 앞으로 만나야 할 ‘그들’의 정체도 한결 명확해졌다. ‘파크 픽션’을 비롯한 ‘갱어비에텔’, ‘로테플로라’ 등 여러 미술관 등에 메일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만나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그 당시만 해도 명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이들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으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우리가 선별한 대상들은 하나같이 적합하고 우리의 일정은 효율적이며 우리가 정리한 인터뷰 문항들은 핵심적이라고 믿었다.
탐방을 실행하며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누구이고 그들은 누구이며 우리는 왜 만나야 하는가’ 라는, 이미 정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질문들은 끝나기는커녕 이제 시작인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파크 픽션이라고?”, “겨우 이거를 보러, 독일까지 온 거야?”, “이 사람은 우리랑은 결이 다른 것 같은데......” 이 같은 대화들이 탐방 첫날, 우리 안에서 오갔다. 열심히 준비했다고 믿었던, 흠결이 없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삐걱거리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혼란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던 나를 구해준 것은 동료들이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과는 좀 다르지만”, “이 사람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우리가 처음에 가려고 했던 장소는 여기가 아니지만,” 그들은 혼란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했다. 그처럼 혼란을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흥미로워하는 순간, 나도 시선이 달라졌다.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들, 정답은 아니지만 가설이 될 수 있는 것들, 빠른 길은 아니더라도 느리게는 갈 수 있는 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것은, 우리는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누군가가, 아마도 이런 것을 가르쳐주겠지?’라던 예상들은 빗나갔다. 대신에 만나게 될 줄 몰랐던 누군가로부터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울 줄 몰랐던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보자 이 현장이 얼마나 배움으로 가득한 곳인지 새롭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던 요소들이 오히려 다양하고 다채로운 기회가 되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출국할 때만 해도 전혀 몰랐던 사실이지만 우리의 숙소에는 현지 대학생과 그 친구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함께 숙소를 사용하게 된 사실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이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생각을 묻고 지역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견해를 들어볼 수 있는 탁월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의 대화를 즐겼고 함께 숙소를 사용하게 된 행운에 감사했다.
탐방을 떠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누구를 만나면 좋을까? 어디를 추천해주고 싶니?”라는 질문을 하면서 다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면서 무척 신기했다. 왜냐하면 어라운드 탐방은 사업이고, 사업은 정해진 기한이 있으며, 사전에 제출을 약속한 결과물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출발 몇 달 전부터 사전조율을 거쳐 인터뷰 스케줄을 잡고 몇 번이고 수정을 거듭하여 완벽하게 일정을 짜고 그것을 재단과 공유했던 것이 아닌가?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현장의 역동성을 온전히 담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고 무작정 현장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장은 결코 무계획적으로 가서는 안 되는 곳이며, 무엇보다도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나 크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실패가 두려웠다. 내 계획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들, 그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실패들이었다. 그래서 사전에 예상했던 그대로 현장이 진행되지 않는 모습에 나는 ‘실패다!’라고 생각했다. 그 고비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나는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실패를 없애고 싶어하지만, 실패는 얄밉게도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패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실패를 실패가 아니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처음, 파크 픽션의 작고 초라한 모습에 실망한 나는 이 탐방이 실패라고 생각했다. 예상과 달랐기에 실패라고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탐방 기간 내내 무수한 ‘실패’를 경험하며, 나는 실패란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했다. 계획과 다르면 실패일까? 계획했던 그대로, 예상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실패가 아닐까? 계획과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이 시간은 새롭고 즐거운 배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 아닌가? 계획이 어긋남으로 인하여 다시금 목표를 살피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닌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시간들을 온전히 즐기고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실패가 아닐까?
탐방 마지막 날, 다시 한 번 파크 픽션을 방문한 나의 눈에는 비로소 이 작은 파크 픽션조차도 이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였다. 예술적 문제해결의 과정은 자본이나 정치의 논리와는 다르며,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고 다양한 관계들이 연결되며, 그렇기에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은 이것은 우리의 처음 목표이기도 했다. 예상은 어긋났지만, 오히려 목표는 더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2019년의 탐방을 마치고 세웠던 우리의 계획들은 2020년, 코로나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하여 취소되었다. 나는 혼란에 빠졌고, 다시금 목표를 살폈다. 만날 수 없고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는 아닐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그것을 찾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자주 만났으며 매우 가까워졌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한결 명확해졌다.
지금도 나는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이 현장에서는 어긋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진짜 일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고민하고 대화하며 목표를 분명하게 하는 것, 그 과정의 가치를 전보다 더 크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2019년 어라운드에서 배웠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2019년 탐방에서의 배움들은 명쾌한 정답이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경험들로서 내 안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듯하다.
박성진(2019 A-round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