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2018년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 이하 고독부)를 신설했다. 고독은 타인과 관계가 결여되어 나타나는 사회적 고립으로, 국가가 대처해야 할 사회 문제로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의료 처방뿐만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할 경우 지역 활동에 참가하거나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우리나라도 2020년에 인구 데드크로스를 마주하게 되었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고독은 고령자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사회의 주요 활동층이 아닌 노인층이 고독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특히나 고독과 외로움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해소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이미 감정이 깊어져 떨치기 쉽지 않다. 고독을 더는 나약함, 단순한 외로움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쌓인 고독과 외로움은 팬데믹의 장기화로 더욱 심각해졌다. 그나마 미약하게 가지고 있던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이 개인의 영역을 지키는 것으로 바뀌었고,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잊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고독감을 문화예술을 통해 해소할 수 있길 바라며,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작점이 되길 바랐다.
에밀리, 아담의 인터뷰와 국내 포럼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문화예술은 한자리에만 있는 활동이 아니라 찾아다니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에밀리는 락다운 상황에서도 공원에 아이를 데리고 아기 엄마들에게 직접 다가갔다. 아담이 진행한 ‘번팅 블라스트’에서는 같은 거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좌판을 펴고 도안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다가갔다. 국내 포럼의 발제자들도 참가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문화예술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직접 예술가를 찾아오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직접 찾아가서 교육을 통해 문화예술을 스스로 즐길 힘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교육자와 학습자의 관계적인 측면도 강조했다. 관계를 형성하여 마음의 문턱을 낮춰야 비로소 문화예술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트랜스포티드의 ‘외로움에 대응하는 창의적인 방법’은 마을 공동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다. 이들이 느끼는 문화예술에 대한 심리적 거리와 친밀도는 모두 다를 것이다. 트랜스포티드는 예술교육뿐만 아니라 마을의 축제나 지역적 특성을 이용한 활동을 통해 마음의 장벽을 낮추어 문화예술에 대한 친밀도를 높였다. 공통점은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에밀리에게는 부모의 역할, 아담에게는 스팔딩 거리라는 생활공간, 한국의 작은 마을에서는 같은 마을에 살며 같은 골목을 공유한다는 것이 공통점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프로그램 자체로 이웃과 심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와 포럼을 통해 우리가 설정한 시작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먼저가 아니라 관계가 먼저라는 것이다. 내 옆집과 소통하고 싶다면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실래요?”가 아니라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국내 문화예술교육의 문제점은 상위기관의 담당자가 계속 바뀌고, 행정 절차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예산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 안에 성과를 내야만 한다. 트랜스포티드의 ‘외로움에 대응하는 창의적인 방법’의 경우 행정 절차는 국내와 다르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행정 개입을 통해 확실한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국내와 차이를 보였다. 물론 트랜스포티드는 민간 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우리가 주의 깊게 본 것은 국내에서는 성과 중심이었다면 ‘외로움에 대응하는 창의적인 방법’은 교육 자체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밀리나 아담 모두 실질적인 결과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반응을 충분한 성과라고 여겼고, 그에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들에게 자원을 지원한 상위기관에서도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교육은 단기간 성과를 내는 영역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을 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과에서 벗어나 충분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단기간 성과를 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진행했다. 그러나 교육과 더불어 고독감과 외로움 해소는 결코 단기간에 해소되는 것이 아니며, 공동체가 주체성을 가지고 유지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린다. 우리는 인터뷰와 포럼 참가를 통해 느끼게 된 이 점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만 했다.
트랜스포티드의 넉넉한 예산 지원 역시 주목할 점이다. 에밀리의 인터뷰에 따르면 20명의 참가자에게 개인당 약 30파운드 (한화 49,000원) 상당의 키트를 제공했으며, 수업 준비에 필요한 예산 및 예술가 인건비에 높은 예산이 책정되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물가 차이가 있겠지만 예술가가 직접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이 또한 우리에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를 넉넉한 예산에 대한 부러움보다 기관에서 예술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책정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문화예술교육 관련법이 생긴지는 채 20년이 되지 않았다. 기관에서 행정 오류가 많은 이유 역시 충분한 사례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교육의 가치를 돈으로 책정할 수는 없지만 적정선의 예산 확보는 질 높은 교육 활동을 일정 부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사와 콘텐츠 개발을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기획단계에서 생각했던 지속성을 놓치고 있었다. 조사를 진행할수록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자료 정리 시기인 지금, 우리가 처음 목표했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체 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미리 부착한 모집 명단 작성이나 참가 부스 설치를 통한 자율적인 참여를 권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찾아가 관계를 맺고,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을 추가하려고 한다.
우리 프로그램은 짧은 콘텐츠가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루고 있다. 짧은 콘텐츠가 모여 연속성을 가진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고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대면과 비대면 모두 활용 가능한 콘텐츠다. 비대면수업은 팬데믹 이후에도 대면수업과 병행할 것으로 생각한다. 예술교육만큼은 대면교육을 추구하길 바라지만 사회현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교육을 진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으며, 국내 NGO 단체의 신생아 모자 뜨기와 같이 분기별 콘텐츠로 활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이루어지던 단순한 지역, 동네 단위의 교육대상이 아니라 다세대주택 거주 주민으로 대상을 한정함으로써 공공기관의 지원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거주환경을 추구하는 아파트 차원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